연예인 트로이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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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5-03-2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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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gement_of_Paris.jpeg 트로이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파리스의 심판.에우리피데스에 의하면 파리스에게 아테나는 트로이군을 이끌고 헬라스를 유린할 권리를, 헤라는 아시아와 유럽의 지배권을,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의 딸이자 그리스 최고의 미인 헬레네를 약속했다.>

트로이 전쟁은 고대에 가장 중요하고 인기 있었던 신화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뒷세이아는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텍스트 중 하나였고,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호메로스를 익히고 있었다. 고대 세계의 여러 도시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신화시대로까지 격상하고, 영웅들의 위세를 빌려 도시를 선전하기 위해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와 트로이의 영웅들이 자신들의 도시를 세운 신화적 창시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로이 전쟁은 신화시대의 종언을 이르는 사건이기도 한데, 이 전쟁으로 인해 파급된 여러 사건들을 끝으로 신들과 반신Demi-god 영웅들이 활약하던 신화시대는 막을 내리고(헤시오도스, 일과 날161-165) 인간의 역사인 철의 시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트로이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사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 사과로 인한 신들의 불화와 파리스의 심판, 그리고 파리스에 의한 헬레네의 납치로 이어지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트로이 전쟁의 이어지는 사건들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신들이 불화때문에 서로 사이가 나빠졌다.
그때 높은 곳에서 청둥을 치시는 제우스께서
놀라운 일들을 궁리하고 계셨으니, 그분께서는 끝없는 대지 위에
큰 혼란을 야기할 참이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필멸의 인간들의 수많은 종족을 없애려고 서두르셨다.
헤시오도스, 여인들 목록 단편 204번 57-61



헤시오도스는 여인들 목록 단편 204번에서 헬레네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헬레네에게 청혼한 수많은 구혼자들은 누가 헬레네를 차지하든 결과에 승복하고, 누군가 힘으로 헬레네를 빼앗을 경우 힘을 모아 범인을 추격하겠다고 맹세한다(40-47). 결국 헬레네는 메넬라오스가 차지하나, 만약 아킬레우스가 구혼했다면 아킬레우스가 헬레네를 차지했을 것이라 말한다(50-54). 그리고 그 직후 시의 분위기가 급변하여 제우스가 인간들을 쓸어버리려 한다는 구절로 전환된다(57-61). 이 장면에서 제우스는 큰 혼란을 일으켜 많은 인간 종족을 없애려고 하는데, 제우스는 인간과 신들끼리 어울려 지내는 것을 원치 않고 이전처럼 신과 인간이 명확하게 분리된 세계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우스는 신과 인간이 어울려 태어난 수많은 반신 영웅들을 하데스로 내려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62-65).

단편 204번은 파피루스의 손상으로 유실된 문구가 많아 전체적인 내용 파악에 어려움이 있지만, 여러 학자들(예를 들어 M. L. West와 W. Burkert)은 이 부분을 트로이 전쟁을 암시하는 부분이라고 해석한다. 이 구절 직전까지 헬레네와 구혼자들의 맹세, 그리고 아킬레우스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이제 헬레네를 납치할 인물만 등장하면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 신들이 불화로 서로 사이가 나빠졌다는 것은 에리스의 황금 사과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해석이 맞다면 트로이 전쟁의 궁극적인 원인은 신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인간들을 쓸어버리려는 제우스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Thanos.jpg 트로이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재미는 대지의 균형을 맞출때 고려할 사항은 아니지. 그렇지만 이건... 나를 미소짓게 하는군">

그렇다면 일리아스에서는 전쟁의 원인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사실일리아스는 독자를 트로이 전쟁 10년차의 한복판으로 데려다줄 뿐, 구질구질하게 전쟁의 원인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일단 이를 잘 드러내는 작품의 도입부를 살펴보자.


노여움을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아카이아인들에게 안겨주었고,
그 많은 영웅들의 강인한 목숨을 하데스로 떠나보내었으며,
그들 자신을 온갖 개 떼와 새 떼의 먹이로 만든
그 저주받을 것을!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가 다투며 갈라서게 된
바로 그때부터 제우스의 계획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1.1-7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우스의 계획'이다. 일리아스의 서두에 등장하는 이 '제우스의 계획'에 대해서 호메로스는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이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대로부터 많은 주석가들이 한마디씩을 보탰는데,일리아스의 내적인 해석으로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연결하여 그리스군의 패배를 원하는 아킬레우스의 요청을 뜻한다는 의견도 있고, 더 넓게 보아 그리스인의 최종적인 승리를 뜻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일리아스를 벗어나 다른 서사시에서 제시된 제우스의 계획을 뜻한다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


Mamaboy.jpeg 트로이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아가멤논과 싸우고 엄마 앞에서 질질 짜는 '아카이아인 중의 최고'. 아킬레우스는 엄마찬스를 사용해 제우스에게 그리스군의 패배를 청탁한다.>

그 하나가 트로이 전쟁의 발단에 대한 서사시인 키프리아이다. 키프리아는 현재 작품이 실전된 상태이나 다른 저자들의 인용을 통해 살아남은 일부 단편들과, 기원후 5세기의 신플라톤주의자 프로클로스가 정리한 요약본을 통해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키프리아에서 말하는 제우스의 계획이란 무엇인가?


옛날에 수많은 종족이 가이아(대지)를 따라 [...] <일부 구절 훼손됨> 깊고 넓은 가이아의 표면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제우스는 이를 보고 불쌍히 여겨 깊은 마음속에 인간들이 가아아에 주는 짐을 덜 계획을 세웠다. 그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큰 싸움을 일으켜 죽음을 통해 그 무게를 덜고자 했다. 그리하여 트로이에서 영웅들이 쓰러졌고, 제우스의 뜻은 성취되었다.이것이 후대에 전해지는 제우스의 뜻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스타시노스, 키프리아



헤시오도스와 마찬가지로 제우스의 계획이란 인간들을 죽여 가이아의 짐을 덜어주려는 것이며, 그 구체적인 방법이 트로이 전쟁이라는 것이다.이를 위해 제우스는 정의의 여신 테미스와 함께 트로이 전쟁을 계획한다. 프로클로스의 요약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전해지지 않으나, 학자들은 헬레네의 탄생이나 파리스의 심판이 테미스가 조언해준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여신들끼리 서로 다투다가 재판받게 된 것은 테미스와 제우스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379E), 이는 파리스의 심판에 테미스가 개입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Themis_Eris.jpg 트로이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하늘에서 파리스의 심판을 지켜보는 테미스와 에리스(그림 상단). LIMC s.v. "Themis" G 18>

그런데일리아스의 '제우스의 계획'에 대한 고대 스콜리아(주석)은 키프리아와 사뭇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이 출전 미상의 이야기에서 제우스는 수많은 인간들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가이아를 돕기 위해 테바이 전쟁을 일으켜 많은 인간들을 죽이고 곧이어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 스콜리아에서 제우스는 처음에 번개나 홍수를 통해 계획을 이루려 했으나, 비난의 신인 모모스가 이를 막고 두 가지 계획을 제안했다고 전한다(여기서는 키프리아의 조언자 테미스의 자리를 모모스가 차지하고 있다.). 그 계획이란 첫 번째는 테티스를 필멸자와 결혼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름다운 헬레네를 낳는 것이다(1.45 sq. van Thiel).


누가 이토록 어울리는 이름을 지었을까?
양편이 서로 다투는 저 창검의 신부를
헬레네라고 이름 지은 이는 누구일까?
[...]
그녀는 과연 그 이름Helene에 걸맞게
함선을 파괴Helenaus하고 남자를 파괴Helanandros하고 도시를 파괴Heloptolis하며[...]
아이스퀼로스, 아가멤논681-683, 687-688



헬레네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납치당함으로써 트로이 전쟁을 촉발하는 매개체가 되고,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위대한 영웅 헥토르를 죽여 트로이 함락의 도화선에 불씨를 당긴다. 결국 창검의 신부 헬레네와 전사들에게 고통을 주는 아킬레우스트로이 전쟁으로 수많은 영웅들을 하데스에 보내 가이아를 도와주기 위한 제우스의 계획을 위해 태어났던 것이다.


Helene.jpeg 트로이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이것이 바로 천 척의 배를 출항시키고 / 일리움의 까마득히 높은 탑들을 무너뜨린 그 얼굴이던가?>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간들이 늘어나며 대지는 고통받고 신들은 불편함을 느껴 결국 인류 절멸이라는 재앙을 계획한다는 구조는 고대 근동 메소포타미아의 신화 아트라하시스와 평행을 이룬다.

600의 600년이 지나지 않았다.
땅은 넓어졌고 사람들은 늘어났다.
땅은 황소처럼 울부짖었다.
그들의 소란 때문에 신은 분노했다.
엔릴은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는 큰 신들에게 말했다.
"인류의 소리가 너무 심하고
그들의 소란에 나는 쉼을 빼앗겼다.[...]"
아트라하시스352-359



아트라하시스에서 하늘의 기상신 엔릴은 지상에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들을 몰살하려 한다. 역시 하늘의 기상신 제우스도 홍수로 인간들을 몰살하려 하나 모모스Momos의 조언으로 인해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는 더 온건한 방법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공교롭게도 바빌로니아의 신화 에누마 엘리쉬에서 은 신들의 시끄러운 불평 때문에 그들을 죽이려 계획하는 창세신 아프수에게 조언하는 신은 뭄무Mummu이다. W. Burkert는 그리스의 이 신화가 아트라하시스에누마 엘리쉬모두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 아니겠냐고 설명한다.

이처럼 트로이 전쟁은 파리스의 심판이나 헬레네의 납치라는 표면적 원인을 넘어, 신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재정립하기 위해 인간을 제거하려 했던 제우스의 의지가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트로이 전쟁을 통해 신과 인간이 지상에서 교류하던 영웅시대는 막을 내리고 두 존재는 명확히 분리된다. 이같은 신에 의한 대량 살육과 세계의 재정립을 다루는 이야기는 비단 그리스 신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내러티브 측면에서 고대 근동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크다. 이해하기 어렵고 난폭하며 두려운 신은 그리스 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여러 자역의 신화가 공유하던 보편적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 등장하기까지 인류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야훼도 대홍수로 한바탕 했잖아?

참고자료

동사원형. (2023). 만화로 보는 일리아스 - 트로이의 노래. 한빛비즈.
아이스퀼로스. (2024).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주원준. (2024). 아트라하시스 이야기 5. 한국고대근동학 노트5, 47-62.
플라톤. (2013). 국가 (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헤시오도스. (2009). 신들의 계보(천병희, 역). 도서출판 숲.
호메로스. (2023). 일리아스(이준석, 역). 아카넷.
Burkert, W. (2008). 그리스 문명의 오리엔트 전통 [Babylon, Memphis, Persepolis: Eastern Contexts of Greek Culture](남경태, 역). 사계절.
Davies, M. (2019). The Cypria. Center for Hellenic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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