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중세 기사의 진짜 현실적인 영지 규모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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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4-07-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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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중세 기사의 진짜 현실적인 영지 규모


여기 13세기 잉글랜드의 한 기사가 있다.



2.jpg 중세 기사의 진짜 현실적인 영지 규모


<존 왕 시대에는 약 4500명이 '기사'라는 칭호로 불렸지만, 그 후 20년 동안 이 칭호는 부유한 소수에게만 제한되었다. 13세기 중반경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은 약 천 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수천 명의 하급 토지 소유주들은 대부분 군사 복무의 대가로 토지를 소유했지만 특별한 칭호는 없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사를 특별한 자질을 가진 엘리트 집단으로 규정하는 기사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측면도 작용했는데, 기사는 연간 최소 20파운드, 13세기 후반에는 40파운드 이상의 토지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잉글랜드 정부가 그러한 수입이 있거나 그 이상인 모든 사람에게 기사 작위를 받도록 요구했던 사실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즉 13세기 기사는 지주 계급 중에서도 상위 10% 이내에 드는 상류층 지주였다.
(연 토지수입 최소 20~40파운드 이상)

잉글랜드에서는 토지수입이 20~40파운드 이상인 지주가 기사 작위를 거부하면 대신 국왕에게 벌금 내야 함


그럼 연수입 20~40파운드인 장원이란 어느 정도 규모일까?
마침 13세기 중후반의 토지조사 기록이 있어서 꽤 정확히 추정할 수 있음



3.jpg 중세 기사의 진짜 현실적인 영지 규모

13세기 후반 브릭스톡 장원이
면적 7600에이커(그중 경작지는 약 2000에이커),
소작인 인구 1500명
지주 연수입이 약 41파운드였다.



5.jpg 중세 기사의 진짜 현실적인 영지 규모
4.jpg 중세 기사의 진짜 현실적인 영지 규모


그러니까 요즘 돌아다니고 있는 이런 설명은 엉터리라는 거.

소작인 인구 150명, 즉 연 지대수입 4~5파운드면 도시의 수공업자나 좀 부유한 농노들하고도 맞먹는 수입이고, 다른 수입원이 없이 군인으로 참전한다면 아마 경기병이나 보병일 거고, 적어도 12세기 이후에는 기사가 아니라 프랭클린, 서전트 또는 잘하면 맨앳암즈라고 불릴 계층임.

앵글로색슨시대 말기 쎄인계급의 최소자격이 토지 5하이드로 소작인 인구 150명 정도였는데, 그거 아니면 둠즈데이북 쓰여지던 시절의 하급기사들의 재산 수준하고 혼동한듯. 13세기에는 인구도 2배 이상 늘었고 기사 신분의 의미도 변함




4323.png 중세 기사의 진짜 현실적인 영지 규모

1086년 이후 200년 동안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는 증거는 풍부하다. 1086년 윌링엄의 소작농(노예 포함)은 23명이었다. 1251년에 실시된 장원 조사에서는 소작농 수가 79명으로 3.4배 증가했다. 노퍽 동부의 마담(Martham)에서는 1086년에 소작농이 74명이었고, 12세기 중반에는 107명, 1292년에는 376명으로 5배 증가했다...

인구 증가에 대한 전반적인 수치를 도출하는 것은 추측에 가까운 일이다. 한 가지 방법은 1377년 인두세에서 밝혀진 14세 이상 남녀 1,386,196명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추정에 따르면, 탈세자, 빈민, 어린이를 감안하면 이 수치는 250만 명에서 300만 명 사이의 인구로 전환될 수 있다. 그런 다음 1348년 이후 발생한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 40~50%를 감안하면 흑사병 직전 인구는 500만 명에서 600만 명 사이였을 것이다. 한 가지 견해에 따르면 1315년에서 1317년 사이에 발생한 끔찍한 기근으로 인해 1300년의 정점에서 이미 감소한 상태였다.



12세기 이전에는 기사의 의미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었는데,
이때 기사의 개념은 직업군인에 가까웠고, 기사가 되기 위해 굳이 토지에서 수입을 얻는 지주거나 영주일 필요가 없었음.

12222.png 중세 기사의 진짜 현실적인 영지 규모

<원래 라틴어 militia는 군대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milites는 기병과 보병을 포함한 군대의 모든 구성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
11세기와 12세기의 여러 문헌들은 사회적 배경이 농민과 가까운 기사 계층이 존재했음을 암시한다. 그들은 오로지 군사적인 직업으로 구분되었다. 나이가 들거나, 병에 걸리거나, 장비를 잃는 등의 이유로 이 직업을 수행할 수 없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milites가 아니게 되어 농민의 신분으로 돌아갔다. 독일에는 비자유 신분의 ministeriales라는 기사 계층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그 기능 면에서 귀족과 가까웠다. 12세기 프랑스에서는 농노에서 기사가 된 사례들이 있었다. 군사적인 직업은 그들을 자유롭게 했지만, 그들의 자유로운 신분은 전적으로 그들의 직업에 달려 있었고, 그들의 상속인에게까지 확대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13세기까지 기사는 일반적으로 귀족, 자유, 공직 수행, 많은 재산과 관련이 없었다. 기사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었고 법적 지위도 없었다. 기사가 된다는 것은 특정한 신분이나 계급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단지 전쟁에서 군대의 주력 부대를 형성하는 엘리트 전사들의 집단이었다.>


12322.png 중세 기사의 진짜 현실적인 영지 규모

흥미로운 것은 교과서에서 배우는 이런 '중세 봉건제도 피라미드'가 실제로 중세 서유럽 사회에 등장한 것은 13세기 전후에서였고,
그것조차 현실과는 동떨어진 관념에 불과했다는 것 (일명 '13세기 상업혁명' 또는 장원제 붕괴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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