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2차대전 대영제국을 압살한 일본군의 전술.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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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4-07-08 12:44본문
<싱가포르 전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1년 12월 8일부터 1942년 2월 15일까지 아서 퍼시벌의 영국군과 야마시타 토모유키의 일본군이 말레이 반도를 놓고 벌인 전투다.
일본은 동남아에서의 연합군 세력 약화 그리고 영국의 해군기지를 얻으려했고 영국군은 그러한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일본군은 1941년 12월 8일, 즉 진주만 공습 바로 다음날 기습적으로 태국과 말레이 반도 북쪽에 상륙을 시도했다.
그리고 먼저 항공대를 동원해 말레이 지역의 비행장들을 공격해 영국 공군을 완전 무력화시킨다.
말레이 반도에 상륙한 일본군은 말 대신 '자전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후퇴하는 군대가 추격자보다 더 빨리 움직인다. 왜냐하면 침략자들은 폭파된 다리나 막힌 도로와 같은 파괴된 인프라로 인해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벼운 자전거를 탄 일본군이 좁은 도로, 숨겨진 길, 임시 통나무 다리를 이용할 수 있었고 다리가 없어도 군인들은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강을 건넜다.
장비 운반에도 매우 유용했다.
결국 압도적인 전차의 화력과 보병의 숫자에 밀린 영국군은 계속해서 밀려났는데
자전거 부대를 이용해 영국군이 다리를 끊는 걸 저지하고, 공병들을 기둥으로 한 인간 다리를 세우면서까지 빠른 이동을 해내는 "일본판 전격전"을 하여 영국군이 전열을 정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진격했다 .
결국 죽음의 벽이라 불린 표고 120m의 부킷티마 고지를 에워싼 닷새간에 걸친 치열한 사투에서 일본군은 100만 주민의 식수원인 저수지 두 곳을 점령하여 시 전역에 대한 물 공급을 중단해버렸고
무차별적인 포격과 공습으로 인해 이미 폐허화한 싱가포르의 방어는 불가능하다고 인식한 퍼시발 장군이 15일 항복하면서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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