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HID의 실제 무장 대북공작 사례-황소 1호 공작[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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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65회 작성일 24-04-2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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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조선, kpi뉴스, 주라벨 티비 실제 황소 공작 참여자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김신조.jpg HID의 실제 무장 대북공작 사례-황소 1호 공작

1968년 1월 21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한다.

일명 1.21 사태

북한 보위성 소속 공작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 가까이까지 침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수뇌부를 충격에 빠뜨리고

주민등록증 발급 실시, 예비군 창설 등 큰 여파를 남겼다.


또한


같은 해 10월 울진, 삼척으로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승복.jpg HID의 실제 무장 대북공작 사례-황소 1호 공작

이 때 그 유명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이승복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군 수뇌부는 이를 보복하기 위한 북파 무장 공작을 계획하게 된다.

(홍재곤씨 인터뷰에서는 1.21사태, 울진 삼척 사태 보복 작전이라고 나오지만 주라벨 티비 출연자의 말에 따르면

울진 삼척 사건은 10월 30일 부터 일어났고 황소 1호 공작은1968년 11월 16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기간의 텀이 짧고

공작이라는 것이 여러 시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것이 바로 오늘 다룰 주제인 황소 1호 공작이다.




어느날



소련 별자리가 전방을 시찰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소련 군사고문단)-이에 대해 말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주라벨 티비에서는 위의 내용으로 말했지만 https://www.google.com/amp/s/m.kpinews.kr/amp/179547233299640

에서는 정치고위부 군관이 온다는 첩보만 듣고 잠입했는데 소련군사 고문관이 있어서 소련 고문관도 사살했다고 나온다.



소련 군사 고문단이 시찰하러 오는 곳의 항공사진을 이용하여 지형을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모래로 산을 만들고 마을을 똑같이 만들었다.

(공작 참여한 주라벨 티비 출연자의 당시 나이는 19세라고 한다.)


주라벨 티비 출연자의 말에 따르면 11명이 참여했고 월간 조선에서는 12명이 참여했다고 나온다.


현역 소위 4명, 중위와 대위 각 1명씩 6명을 선발해서 장교 6명 일반 대원 6명 총 12 명이 이 작전에 참가했다.(월간 조선의 내용을 따름)


1968년 11월16일 아침


MDL과 북방한계선 사이에 설치된 북한군의 육중봉쇄 장애물을 뚫고 15일 마침내 부여받은 목표지점(CT432234)에 도달했다. 황소공작팀은 인마살상용 M18 크레모아(클레이모어) 4발을 설치하고 평강고원의 갈대숲에 몸을 숨기로 때를 기다렸다.


(공작원들을 50m 간격으로 3명, 3명, 4명 씩 배치한 다음 크레모아 4발을 준비했다.)


크레모아.webp.ren.jpg HID의 실제 무장 대북공작 사례-황소 1호 공작(자료 사진)


북한측 콘보이 차량과 양옆으로 12명 씩 총 24명의 호위병들이 선두로 지나가고


소련군사 고문단이 탄 지프 차량이 지나갔다.


SmartSelect_20240426_002647_Samsung Notes.jpg HID의 실제 무장 대북공작 사례-황소 1호 공작

(대충 이런 느낌?)


목표물을 확인하고 크레모아를 폭발시켰다. (당사자의 말을 따르면 후폭풍이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공작원들은 원래 공작을 했다는 증거를 가져오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죽은 사람의 총을 가져갔다고 한다.


우리 쪽 GP에서는 아침 10시 경에 크레모아가 터지고 그 후 2시간 동안이나 총격전이 벌어지는 걸 목격했다.


그 후 철원 벌판 남쪽 방향으로 도주를 시작한다.


12시 부터 대원들이 서서히 복귀한다. 최종적으로 저녁 8시에 마지막 인원이 복귀 전원 생존했다.


마지막 복귀 대원은 당황해서 남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서 빙돌아서 복귀를 해서 늦게 복귀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측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월간 조선에 따르면


"우리 측 GP에 조종관인 정인배 소령하고 키퍼를 머물게 했어요. 혹시 밤에 저쪽 GP에서 보복공격이 나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했죠. 아니나 달라요. 그날 밤에 걔들이 습격을 왔어요. 정인배 소령이 들어오는 걸 그냥 막 갈겨 버렸죠"

DMZ_GP.jpg HID의 실제 무장 대북공작 사례-황소 1호 공작

(gp 자료 사진)


며칠 뒤에 북한군 50여명이 3사단 관할 아군 507GP를 둘러싸고 기습 보복공격을 가해왔다. 조명탄이 터진 가운데 남방한계선 철책의 GOP에서 관측하니, 북한군 방망이수류탄과 아군의 세류수류탄이 교차하는 가운데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GP 공격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만큼 북한군의 보복 의지가 강했던 것을 보여준다.



" 그 다음해에 그쪽 GP장이 귀순했어요. 유 무슨 소위였는데 신문 과정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는 한 명의 피해자도 없는데 그쪽은 23명이 죽었다는 거예요. 공격 당시 큰 성공이라는 것은 직감했지만 그 정도 전과를 올릴 줄은 몰랐죠. "



이날의 공로로 이들 팀에는 충무무공훈장 5개 등 훈장이 12개가 수여되었다고 한다.


418324_118875_195.jpg HID의 실제 무장 대북공작 사례-황소 1호 공작

위 사례는 매우 성공적이지만


다른 사례를 보면


육군 첩보대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북측은 북한군 복장을 한 전우들의 시신 7구와 북한군 배낭, 그리고 개머리판 없는 M2카빈소총과 수류탄 등 노획품을 판문점 회담장 주변에 '정전협정 위반 증거품'으로 전시해 놓고 본회의에서 강력 항의했다고함


그자리에서 하지만 유엔사(한미) 측은 북측이 침투 중에 전사한 북파 공작원 사체의 확인을 요구하자 "우리 군의 병사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오히려 "우리는 정전협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면서"시신에 북한 군복을 입혀 놓고 꾸민 자작극"이라고 덮어 씌우기로 일관하거나.


다른 공작팀은 68년 8월 하순 아군 3사단 지역에서 제초제가 살포된 군사분계선을 넘어 적진 DMZ를 들어가자마자 고인돌처럼 넓고 납작한 바위에 오른팔과 왼팔, 두 다리, 그리고 목까지 절단된 끔찍한 시신을 목격했는데. 한 맺힌 표정으로 눈을 부릅뜬 그 시신은 북한군에 사살된 단독첩보수집 공작원이었다.

등등 북파공작원들의 최후가 좋지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황소 1호 공작이 성공적인 북파공작으로 손꼽히는 이유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는 이름 모를 수많은 공작원들이 소리없이 쓰러졌다.

이들을 위해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가져서 그들의 넋을 기리자.

"나는 음지에서 싸워 이기고 양지에서 영광 누린다"

-H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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